도시계획가 아카이브 · 12
일데폰스 세르다 — '도시계획학'이라는 단어를 만든 엔지니어
근대 도시계획의 태동 · 바르셀로나 에이샴플레 | 1815~1876
◀ 이전 11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 다음 13 카밀로 지테 ▶
CONCEPT
1. 개념 — 이 인물이 남긴 것
일데폰스 세르다(Ildefons Cerdà, 1815~1876)는 도로공학을 전공한 토목 엔지니어였습니다. 오스만이 행정가로서, 옴스테드가 조경가로서 도시 문제에 접근했다면, 세르다는 엔지니어의 통계·측량 방법론으로 도시를 재설계한 인물입니다. 그가 설계한 바르셀로나의 확장 지구, 에이샴플레(Eixample)는 오늘날에도 격자형 도시계획의 교과서적 사례로 꼽힙니다.
세르다의 더 근본적인 유산은 따로 있습니다. 그는 1867년 저서 『도시화 일반이론 (Teoría General de la Urbanización)』에서 'urbanización'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어 사용했고, 이는 오늘날 영어 urbanism·한국어 '도시계획학'의 어원적 뿌리가 되었습니다. 즉 세르다는 하나의 도시를 설계했을 뿐 아니라, 도시계획을 과학적 학문으로 정의한 최초의 인물입니다.
LIFE & TIMES
2. 역사 — 인물과 시대
세르다는 1815년 카탈루냐 지방에서 태어나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도로·철도 엔지니어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정치에도 잠시 몸담았으나, 그의 이름을 역사에 남긴 것은 바르셀로나의 확장계획이었습니다.
- 1815카탈루냐 첸테예스(Centelles) 출생
- 1841토목공학 학위 취득, 도로·철도 엔지니어로 근무
- 1855~1859바르셀로나 노동자 계층 주거·위생 실태를 통계적으로 조사
- 1854바르셀로나를 둘러싼 중세 성벽(무랄라) 철거
- 1859에이샴플레 확장계획 수립, 지방 공모전에서는 타 안이 선정되었으나 중앙정부가 세르다 안을 최종 채택
- 1860에이샴플레 계획 공식 승인, 시행 시작
- 1867『도시화 일반이론』 출간, 'urbanización' 용어 최초 사용
- 1876사망
CONTEXT
3. 배경 — 왜 등장했나
19세기 바르셀로나는 중세 성벽에 둘러싸인 좁은 구시가지(현재의 고딕 지구)에 산업화로 유입된 인구가 몰리면서, 당대 유럽에서 손꼽힐 만큼 인구밀도가 극심했습니다. 세르다가 직접 수행한 통계 조사에 따르면 노동자 계층 거주지의 평균 수명은 부유층 거주지보다 현저히 낮았고, 그는 이 격차의 원인을 과밀·환기 부족·비위생적 주거 환경에서 찾았습니다.
1854년 군사적 목적의 성벽이 철거되면서 도시 확장이 물리적으로 가능해졌고, 스페인 중앙정부는 이 신시가지 계획을 공모에 부쳤습니다. 지역 건축가의 방사형 안이 지방 공모에서는 선정되었지만, 마드리드의 중앙정부는 세르다의 격자형 안을 최종 채택했습니다. 이 결정은 지역 자치권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THE THEORY
4. 핵심내용 — 이론의 구체적 내용
가. 격자형 가로망과 모따기 코너(chaflanes)
에이샴플레는 가로·세로 약 113m의 정사각형 블록이 반복되는 격자망으로 구성되며, 가장 큰 특징은 블록의 네 모서리를 45도로 잘라낸 팔각형 형태입니다. 이 모따기 덕분에 교차로에서의 시야가 확보되고, 이후 등장한 노면전차·자동차가 회전할 때 필요한 공간을 자연스럽게 제공했습니다. 19세기 중반에 이미 미래의 교통수단 변화를 염두에 둔 설계였다는 점이 높이 평가됩니다.
모서리를 45도로 잘라낸 팔각형 블록이 반복되는 에이샴플레 블록 형태를 표현한 개념 패턴 이미지입니다. 실제 도로망을 표시한 지적도가 아닙니다.
나. 위생·통풍·일조 — 안뜰이 있는 블록
세르다의 원안에서 각 블록은 네 면 중 일부만 건축하고, 나머지는 블록 내부에 녹지 안뜰(interior garden)을 두어 모든 주거 공간이 충분한 햇빛과 통풍을 확보하도록 설계했습니다. 도로 폭 역시 기존 구시가지보다 훨씬 넓은 약 20m로 계획해, 통풍과 채광은 물론 향후 인프라 확장 여지까지 고려했습니다.
블록의 일부 면만 건축하고 중앙에 녹지 안뜰을 남긴 세르다 원안의 구조를 표현한 개념도입니다.
다. 인프라 통합과 도로 위계
세르다는 도로를 폭과 기능에 따라 위계화하고, 그 지하에 상하수도·가스관을 계획적으로 매설했습니다. 오스만의 파리가 기존 시가지를 관통하며 인프라를 통합했다면, 세르다는 백지 상태의 신시가지에 인프라 위계를 처음부터 설계에 반영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도로 지하에 상수도·하수도·가스관을 위계에 따라 매설하는 구조를 표현한 개념 단면도이며, 표기된 수치는 개념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값입니다.
라. '우르바니사시온(urbanización)' — 학문으로서의 도시계획
세르다는 도시 문제를 감각이나 미학이 아니라 통계와 측량에 근거한 공학적 문제로 접근했습니다. 그가 만든 'urbanización'이라는 용어는 이후 스페인어권에서 도시계획학 전반을 가리키는 표준 용어로 자리 잡았으며, 영어 urbanism의 개념적 원류로도 언급됩니다.
CASES
5. 대표사례 — 실제 적용된 프로젝트·도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물론 바르셀로나 에이샴플레 지구 자체입니다. 이후 마드리드의 엔산체(Ensanche) 계획을 비롯해 스페인 각지의 신시가지 확장 계획, 나아가 라틴아메리카 여러 도시의 격자형 확장계획에도 유사한 방법론이 적용되었습니다.
스케일 — 도시 안에 대형 녹지를 삽입하고, 이를 녹지축으로 도시 전체와 연결
개입 방식 — 조경가로서 목가적 풍경을 설계, 기존 시가지 관통보다 별도 부지 조성
스케일 — 백지 상태의 신시가지 전체를 격자망·인프라 위계로 처음부터 설계
개입 방식 — 엔지니어로서 통계·측량에 근거해 도로·위생·교통을 공학적으로 통합
KEY POINTS
6. 키포인트 — 시험·실무 핵심 요약
EXAM & PRACTICE FOCUS
- 에이샴플레(Eixample, 1859) — 113m 정사각형 격자 블록 + 45도 모따기 코너(chaflanes)
- 모따기 코너 — 교차로 시야 확보 및 향후 전차·자동차 회전 공간을 선제적으로 고려한 설계
- 블록 내부 안뜰 — 통풍·일조 확보를 위한 저밀도 개방형 블록 원안
- 도로 위계 + 지하 인프라 통합 — 상하수도·가스관을 도로 폭 위계에 맞춰 계획적으로 매설
- 'urbanización' 용어 최초 사용(1867) — 도시계획을 통계·공학 기반의 과학적 학문으로 정립
- 오스만(기존 시가지 관통형)과 대비되는 '백지 상태 신시가지 확장형' 계획의 대표 사례
LEGACY
7. 이후영향 — 후대 계보
세르다가 만든 'urbanización'이라는 용어는 이후 스페인어권 도시계획학의 표준 명칭으로 자리 잡았고, 그의 격자형 확장 방법론은 마드리드를 비롯한 스페인 각 도시, 나아가 라틴아메리카 여러 도시의 신시가지 계획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현대적 계승은 바르셀로나 자체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시는 2010년대 이후 에이샴플레의 격자 블록 여러 개를 묶어 자동차 통행을 제한하고 보행·자전거·녹지 공간으로 전환하는 '슈퍼블록(Superilles/Superblocks)'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 이는 세르다가 원안에서 의도했던 블록 내부 안뜰과 통풍이라는 가치를, 자동차 시대 이후의 언어로 재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최근 국내에서 논의되는 자율주행·전기차 확산에 따른 도로 공간 재분배, 탄소중립을 위한 보행·자전거 중심 가로 전환 논의와도 직접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CRITIQUE
8. 한계와 평가
세르다의 원안은 노동자 계층의 위생 개선을 목표로 저밀도·개방형 블록을 지향했지만, 실제 시행 과정에서 토지 소유주와 개발업자들의 압력으로 블록의 네 면이 모두 건축되고 내부 안뜰 상당수가 사라지는 등, 원안의 위생·통풍 의도가 상당 부분 훼손되었습니다. 그 결과 계획 밀도보다 실제 밀도가 크게 높아졌습니다.
또한 애초 노동자 계층의 주거 개선을 목표로 한 계획이었음에도, 실제로는 지가 상승과 함께 중산층 이상이 에이샴플레에 입주했고, 정작 저소득층은 구시가지나 도시 외곽에 계속 밀집하는 형평성 문제가 남았습니다. 이는 좋은 의도의 계획이라도 실행 단계의 제도적 뒷받침(용도지역제·개발이익 환수 등)이 없으면 왜곡될 수 있다는 반면교사로 자주 인용됩니다.
CLOSING
9. 맺음말 — 왜 알아야 할까
세르다는 하나의 도시 지구를 설계했을 뿐 아니라, '도시를 계획한다'는 행위 자체에 이름을 붙이고 학문적 방법론을 제공한 인물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도시계획학(urbanism)'이라 부르는 분야의 이름과 통계·공학적 접근 방식은 상당 부분 그의 유산 위에 서 있으며, 바르셀로나의 슈퍼블록 정책은 그 유산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도시를 아름답게 그리는 것과, 도시가 실제로 사람을 병들지 않게 만드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저는 후자를 계산하고자 했습니다.
다음 편은 세르다의 기하학적 격자 계획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도시의 아름다움은 숫자가 아니라 광장과 가로의 공간적 구성에서 나온다고 주장한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카밀로 지테로 이어가겠습니다.
'도시계획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도시계획가 -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도시공원과 조경) (0) | 2026.09.03 |
|---|---|
| 도시계획가 - 조르주 외젠 오스만의 파리대개조 (0) | 2026.09.02 |
| 도시계획가 - 안드레아 팔라디오 (0) | 2026.09.01 |
| 도시계획가 - 도메니코 폰타나 (0) | 2026.08.31 |
| 도시계획가 - 프란체스코 디 조르조 마르티니 (0) | 2026.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