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다무스란?
도시계획의 아버지, 격자형 도시계획의 시작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속 도시계획가 · 밀레투스·피레우스·투리오이 사례
2,500년 전 아이디어가 지금의 격자도시로 이어지기까지
목차
개념히포다무스가 남긴 것
쉽게 말하면, 히포다무스는 도시를 "계획해서 만든다"는 개념 자체를 처음 이론화한 사람입니다. 그 이전까지 그리스 도시들은 지형과 필요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자라난 유기적(organic) 형태였습니다. 히포다무스는 여기에 격자형(grid) 가로망과 기능별 구역 배치라는 "설계도"를 들이민 최초의 인물로 꼽힙니다.

소아시아 밀레투스 출신의 그리스 도시계획가이자 철학자로, 격자형 가로망을 이용해 도시 전체를 사전에 설계하는 방식을 창시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그를 계획되지 않은 도시들의 관행을 깨고 도시를 구획하는 기술을 고안한 인물로 소개합니다.
근거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제2권 제5장·제8장 (원문 완역이 아닌 요지 정리입니다)
역사인물과 시대
히포다무스는 기원전 5세기에 활동한 인물로, 그가 관여했다고 전해지는 주요 사업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BC 494년
밀레투스, 페르시아에 의해 파괴이오니아 반란 진압 과정에서 도시 전체가 파괴됨. 이후 재건 과정에서 격자형 계획이 적용됨.
- BC 5세기 중반
밀레투스 재건 계획파괴된 밀레투스를 격자형 가로망으로 재건. 히포다무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사례입니다.
- BC 5세기 중반
피레우스(Piraeus) 항구도시 계획아테네의 외항인 피레우스의 격자형 가로망 설계자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직접 언급. 히포다무스 관련 기록 중 사료적 근거가 가장 명확한 사례입니다.
- BC 444~443년
투리오이(Thurii) 식민도시 건설 참여페리클레스가 주도한 범그리스 식민도시 건설에 계획가로 참여. 역사가 디오도로스 시켈리오테스의 기록에 전해집니다.
- BC 408년
로도스(Rhodes) 신도시 건설로도스섬 세 도시의 통합(시노이키스모스)으로 세워진 신수도가 격자형으로 조성됨. 시기상 히포다무스 본인의 만년~사후에 가까워, 그가 직접 설계했다기보다 "히포다무스식(Hippodamian) 양식"이 적용된 사례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배경왜 격자였나

페르시아 전쟁으로 다수 도시가 파괴되면서, 백지 상태에서 도시를 다시 세워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불규칙하게 재건하기보다 효율적으로 구획하려는 요구가 커졌습니다.
균등한 격자 구획은 시민 간 평등한 토지 배분을 상징하는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특권층이 우선 배치되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아테네 민주정 전성기와 시기가 겹칩니다.
그리스의 지중해 식민 활동이 확대되면서 신도시를 빠르게, 여러 곳에 동시다발적으로 건설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표준화된 계획 방법론에 대한 수요가 히포다무스식 계획이 확산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세 배경이 겹치면서, 그리스 세계에는 도시를 처음부터 계획해서 짓는 수요가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났습니다. 히포다무스의 격자 이론은 이 수요에 대한 하나의 해법으로 주목받았습니다.
핵심 내용격자체계의 원리
① 공간의 3분할 — 조닝 개념의 원형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록에 따르면, 히포다무스의 계획론은 단순히 길을 격자로 긋는 것을 넘어 사회 구성과 토지 이용을 함께 3분할하는 체계였습니다.
- 기술자·장인 계급
- 농민 계급
- 전사(군인) 계급
이상적 도시 규모로 시민 1만 명을 제시했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 신성구역 (종교시설용)
- 공공구역 (공공재정 충당용)
- 사유구역 (농민 개인 소유)
공공구역 수입으로 전사 계급을 부양하는 구조로 설계됐습니다.
② 격자 가로망 — 물리적 구현

대표 사례밀레투스 · 피레우스 · 투리오이

| 도시 | 시기 | 위치 | 근거 |
|---|---|---|---|
| 밀레투스 | BC 494년 이후 재건 | 소아시아(현 튀르키예) | 히포다무스의 대표작으로 통용되는 전승 |
| 피레우스 | BC 5세기 중반 | 아테네 외항 | 아리스토텔레스가 직접 언급 |
| 투리오이 | BC 444~443년 | 이탈리아 남부 | 디오도로스 시켈리오테스의 기록 |
| 로도스 | BC 408년 | 로도스섬 | '히포다무스식 양식'으로 통칭되는 사례 |
키포인트꼭 알아야 할 것
🎯 KEY POINTS — 이거 하나만 기억해요
- 01히포다무스는 "도시를 사전에 계획해서 만든다"는 개념을 이론화한 최초의 인물로 통용되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직접 언급한 몇 안 되는 고대 도시계획가입니다.
- 02핵심 아이디어는 격자형 가로망 + 기능별 구역 3분할 — 오늘날 조닝(zoning) 개념의 가장 오래된 원형으로 평가됩니다.
- 03사료적 근거가 가장 명확한 사례는 피레우스이며, 로도스는 그의 이름을 딴 '양식'이 적용된 사례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 04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아이디어를 소개하면서도 비현실적인 부분은 비판했습니다 — 8절 참고.
- 05격자형 계획의 계보는 로마 카스트룸 → 근대 식민도시 → 오늘날 맨해튼까지 2,500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후 영향로마에서 맨해튼까지
격자형 계획이라는 아이디어는 히포다무스 이후로도 끊이지 않고 재사용되었습니다. 직접적인 학문적 계보라기보다, 실용성이 검증되면서 시대마다 반복적으로 채택된 것에 가깝습니다.

- 고대 로마
카스트룸(Castrum) 군영 도시로마군 야영지·식민도시의 표준 격자 배치. 그리스 격자계획을 그대로 계승했다기보다, 로마 고유의 군사적 실용 전통이 병행해 발전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 1573년
스페인 인디아스 법(Laws of the Indies)중남미 식민도시 건설 시 격자형 광장 중심 계획을 법제화. 고대 격자전통이 근세 식민도시 표준으로 재등장했습니다.
- 1733년
서배너(Savannah, 미국 조지아주)제임스 오글소프의 격자+공공광장 조합 계획. 근대 미국 도시계획의 상징적 사례입니다.
- 1811년
맨해튼 커미셔너스 플랜(Commissioners' Plan)뉴욕 맨해튼 전역을 격자로 확정한 대규모 계획.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뉴욕 가로망의 뼈대입니다.
한계와 평가비판적으로 보기
① 아리스토텔레스의 당대 비판
흥미롭게도 히포다무스를 후대에 알린 가장 중요한 사료(『정치학』)의 저자인 아리스토텔레스 본인은 그의 이론에 상당히 비판적이었습니다. 계급을 셋으로만 나누는 것이 실제 폴리스 운영에는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지적했고, 소수의 법으로 모든 분쟁을 다루자는 제안이나 발명에 대한 포상 제도 등 일부 아이디어를 비현실적이라 평가했습니다.
② 지형 무시 비판
격자형 계획은 평탄한 대지에서는 효율적이지만, 경사지·해안선 등 지형 조건을 무시하면 오히려 배수·접근성 문제를 낳는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됩니다. 이는 현대의 격자형 신도시(계획도시) 비판과도 맥이 닿아 있습니다.
③ 획일성 비판 — 현대와의 연결고리
제인 제이콥스 등 20세기 후반 도시계획 비평가들이 모더니즘 도시계획을 비판할 때 등장하는 "획일적·기하학적 계획에 대한 회의"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넓게는 히포다무스식 계획 전통에 대한 오래된 문제의식과도 이어집니다.
맺음말왜 알아야 할까?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도시는 계획해서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2,500년 전 한 사람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습니다. 오늘날 신도시 조성 시 반드시 거치는 용도지역 구분, 격자형 가로망 설계 같은 실무의 뿌리를 따라 올라가면 결국 히포다무스와 만나게 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히포다무스의 이론이 로마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한 비트루비우스, 혹은 르네상스 이상도시론의 알베르티를 다뤄보겠습니다.
※ 본 포스팅은 도시계획 분야 학습 및 정보 정리를 위한 아카이브 콘텐츠입니다. 법령·사료 해석은 개정·연구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중요한 인용 전에는 원문 확인을 권장드립니다.
주요 참고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제2권 / 도시계획사 개설서 통설 정리 / 디오도로스 시켈리오테스(투리오이 관련 후대 기록)